

체코와 오스트리아 그리고 헝가리, 이탈리아의 베네치아와 피렌체, 로마를 지나 도착한 밀라노.
현재 세계 패션의 중심지이자 이탈리아의 경제 수도의 지위를 갖고 있는 이곳에서
중세 유럽 문화의 소용돌이 그 현장을 담았다.
영롱한 진주빛을 발하는 대리석의 외관을 자랑하는 밀라노 대성당은 1386년 착공한 이후 1951년이 되어 그 공사가 마무리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저렇게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상상조차 어려운 비용들었을지 감히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
밀라노 대성당은 영롱한 진주빛의 흰 대리석으로 지어졌다. 건축물은 그 시기 건출기술과 문화를 담고 있을 뿐만아니라, 그 지역의 기후, 환경, 지리적인 요인까지도 담고 있는데, 이는 건축재료를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사람들은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그 지역에서 오랜시간 동안 기후, 환경적인 요인들로 부터 건축물을 보존시켜 줄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건축재료를 선택하게 될 것이니까.
그러나 밀라노에서는 대리석을 발견할 수 없다.
현재에도 이탈리아는 세계 1위 대리석 산지이지만 그곳이 밀라노는 아니다. 밀라노 대성당을 짓는데 사용된 대리석은 이탈리아 각지에서 공수되어졌고 그중 대표적인 대리석 산지는 밀라노로부터 300km 떨어진 토스카니 지방에서 채굴되어졌는데 이곳에서 채굴된 대리석은 카라라 비앙코 라고 불리며 이탈리아에서도 최상급 대리석으로 현재까지 세계로 수출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무겁고 거대한 대리석, 그것도 어마어마하게 많은 양을 증기기관이나 내연기관도 없었던 그 당시에 무슨수로 옮겨왔을까.
서울과 부산의 직선거리와 맞먹는 300km의 물리적 거리, 로마시대 이미 이탈리아 전역은 촘촘하고 현대적인 도로망을 갖췄으나, 험난한 산과 강의 지리적 거리 뿐만 아니라 14세기에 활동했던 흉악한 산적과 해적의 약탈을 헤쳐지나 밀라노 대성당의 공사장까지 대리석을 옮기기 위해서는 수많은 인력과 자본이 투자되었을 것이다.
밀라노 대성당 건축이 진행되던 14세기 말, 르네상스로 인해 이탈리아로 유럽 전역의 내로라 하는 예술가들이 모여들었고, 밀라노에도 대성당을 건축하고자 이름난 조각가들이 자리잡았으며,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대리석을 비롯한 물자들을 효율적으로 소화하기 위해 밀라노는 자연스럽게 도시 곳곳을 운하로 연결하면서, 베네치아 못지 않은 운하도시로 탈바꿈했다.
당시 밀라노의 운하는 운하의 종류로 구분할 때, 도시 내의 도로망을 운하로 대체한 도시운하이며 베네치아와 유사한 형태였다. 우리가 대표적으로 알고 있는 이집트의 수에즈운하는 바다와 바다를 연결한 연해운하이며, 아메리카대륙의 파나마 운하는 두개의 대양의 다른 해수면을 갑문을 통해 연결한 갑문운하이다.
현재 밀라노에서는 운하는 나빌리오 지구 외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내륙에 위치한 밀라노에서 도시 내 도로망이 운하로 연결되었을 때의 효용은
무거운 대리석의 운반에는 큰 도움이 되었을지 모르나 밀라노 대성당의 외관이
완성단계에 이른 뒤에는 도시발전을 더디게 만드는 애물단지로 전락했을 것이다.